연천 전곡리 유적
1. 제1장 모든 것을 바꾼 발견
경기도 연천을 가로지르는 한탄강 유역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수십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현무암 용암대지 위로 강물이 흐르며 빚어낸 독특한 지형은 오늘날 많은 이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1 그러나 이 평화로운 강변의 흙 속에는 20세기 고고학계의 가장 중요한 통념 하나를 송두리째 뒤흔들 거대한 비밀이 잠들어 있었다.
이 발견이 있기 전까지, 세계 구석기 시대 연구는 하나의 거대한 ’선’에 의해 양분되어 있었다. 이른바 ’모비우스 학설(Movius Line)’이라 불리는 이 이론은 아프리카와 유럽의 초기 인류가 양면을 정교하게 다듬어 만든 ’주먹도끼(Hand Axe)’라는 혁신적인 도구를 사용한 반면, 인도를 기준으로 그 동쪽, 즉 동아시아의 인류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형태의 ‘찍개(Chopper)’ 문화에 머물러 있었다고 규정했다.3 이는 단순히 도구의 차이를 넘어, 동아시아의 구석기 문화가 서구에 비해 기술적으로나 인지적으로 정체되어 있었다는 편견을 암묵적으로 내포하고 있었다.
1978년, 바로 이 한탄강변에서 그 모든 가정을 무너뜨릴 돌멩이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동아시아에서는 존재하지 않아야 할 바로 그 유물, 전형적인 아슐리안(Acheulean) 형태의 주먹도끼였다.3 연천 전곡리 유적의 발견은 단순히 한반도에 또 하나의 구석기 유적이 추가되었다는 의미를 넘어섰다. 이는 과학적 ’사실’이 새로운 증거 앞에서 어떻게 수정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이자, 서구 중심의 인류사 해석에 거대한 균열을 낸 혁명적 사건이었다.
따라서 전곡리 유적은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수십만 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구석기 수렵-채집인의 삶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다. 둘째,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역사를 바꾼 과학사적 이정표다. 마지막으로, 오늘날에는 박물관과 축제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과거의 유산을 현재의 문화로 생동하게 만드는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다.2 이 보고서는 한탄강변의 작은 유적이 어떻게 세계사를 다시 쓰게 했는지, 그 놀라운 여정을 심층적으로 추적하고자 한다.
2. 제2장 시간 속을 거닌 한 병사의 산책: 발견의 이야기
역사적인 발견은 거대한 탐사 계획이 아닌, 한 개인의 우연한 산책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전곡리 유적의 발견 역시 그러했다. 1978년, 경기도 동두천 미 공군기지에서 기상예보관으로 근무하던 그렉 보웬(Greg L. Bowen)은 고고학에 조예가 깊은 젊은이였다.3 미군으로 복무하기 전, 그는 캘리포니아의 빅터 밸리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한 경험이 있었고, 이는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을 심어주었다.3
어느 날, 보웬은 여자친구와 함께 한탄강 유원지로 나들이를 갔다. 강변을 거닐던 그의 눈에 예사롭지 않은 돌멩이 몇 점이 들어왔다. 자연적으로 닳고 깨진 돌이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양면을 체계적으로 떼어내 날카로운 날을 만든 흔적이 역력했다.5 준비된 자에게만 보이는 법, 보웬은 자신이 발견한 것이 단순한 돌이 아니라 인류의 먼 과거가 남긴 석기일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의 다음 행동은 이 발견을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과학적 사실로 만드는 결정적인 과정이었다. 보웬은 자신이 수습한 석기들을 정리하고, 이것이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라는 자신의 추정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이 자료를 당시 한국 고고학계의 최고 권위자였던 서울대학교 박물관장 김원용 교수에게 보냈다.5 동시에 세계적인 선사고고학 전문가였던 프랑스의 프랑수아 보르도 교수에게도 연락을 취하며 국제적인 검증을 구했다.10
보웬의 편지를 받은 김원용 교수는 즉시 사안의 중요성을 파악했다. 1979년, 그는 동료 학자들과 함께 직접 전곡리 현장을 답사했고, 보웬이 석기를 발견한 지점 외에도 더 많은 석기들이 흩어져 있는 새로운 지점들을 확인했다.5 이후 프랑스에서 석기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돌아온 정영화 교수가 현지 조사를 통해 이 석기들이 유럽과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물인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임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3 한 아마추어의 예리한 관찰이 국내 최고 전문가의 학술적 검증과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적인 발견으로 공인되는 순간이었다.
이 발견이 가져온 파장은 즉각적이었다. 발견 이듬해인 1979년, 곧바로 공식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되었고, 같은 해 10월 2일, 정부는 이 지역의 막대한 가치를 인정하여 국가 사적 제268호로 지정했다.1 한 미군 병사의 산책이 한반도의 땅속에 잠들어 있던 수십만 년의 역사를 깨우고, 세계 구석기 연구의 지도를 다시 그리게 한 것이다.
3. 제3장 패러다임을 부수다: 주먹도끼와 모비우스 학설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 한 점이 왜 그토록 세계 고고학계를 뒤흔들었을까?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학계를 지배하던 거대한 이론, ’모비우스 학설’을 이해해야 한다. 1948년, 하버드 대학교의 고고학자 할람 모비우스(Hallam L. Movius Jr.)는 전 세계 구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들을 분석한 뒤 하나의 가설을 제시했다. 그는 인도 북부를 가로지르는 가상의 선, 즉 ’모비우스 라인’을 긋고, 이 선을 기준으로 서쪽(아프리카, 유럽, 서아시아)과 동쪽(동아시아, 동남아시아)의 구석기 문화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3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선의 서쪽에서는 인류가 돌의 양면을 모두 가공하여 대칭적인 형태의 정교한 주먹도끼를 만드는 ’아슐리안 문화’를 발전시켰다. 반면, 선의 동쪽에서는 강가의 조약돌 한쪽 면만을 투박하게 떼어내 날을 만든 ’찍개 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이었다.3 이 학설은 단순한 기술적 구분을 넘어, 동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나 유럽의 동족에 비해 인지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덜 발달했거나 정체되었다는 인종차별적 편견을 강화하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했다.12 수십 년간 이 학설은 교과서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동아시아는 구석기 시대 연구에서 변방으로 취급받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곡리의 발견은 ’사건’이 되었다. 전곡리에서 출토된 주먹도끼와 박편도끼(Cleaver)는 모비우스 라인 동쪽에서는 결코 발견되어서는 안 될 유물이었다.3 이 석기들은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눈물방울 모양, 양면을 체계적으로 가공하여 날카로운 날을 만든 형태 등 아슐리안 석기의 모든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이는 동아시아의 초기 인류 역시 서구의 인류와 동일한 수준의 기술적, 인지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하고 반박 불가능한 물질적 증거였다.
전곡리의 발견은 모비우스 학설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이후 중국 등 다른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아슐리안형 석기들이 잇달아 발견되면서, 모비우스 학설은 사실상 폐기되었다.6 이 과정은 단순히 학설 하나가 수정된 것을 넘어, 서구 중심적 시각으로 재단되었던 인류의 과거를 바로잡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동아시아의 구석기 시대는 더 이상 ’정체된 변방’이 아니라, 지역적 환경과 재료에 맞춰 독자적인 기술을 발전시키고 적응해 나간 인류 진화의 또 다른 중요 무대였음이 증명된 것이다. 전곡리의 발견은 이처럼 구석기 역사에 대한 일종의 ’탈식민화’를 이끈, 고고학계의 기념비적인 전환점이었다.
4. 제4장 한탄강변의 삶: 구석기 세계를 발굴하다
전곡리 유적의 중요성은 단지 모비우스 학설을 반증했다는 점에만 그치지 않는다. 1979년 첫 발굴 이래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20회 이상 진행된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이곳은 수십만 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의 삶을 복원할 수 있는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거대한 타임캡슐임이 밝혀졌다.3
무엇보다 유적의 규모가 압도적이다. 한탄강과 임진강 유역에는 여러 구석기 유적이 분포하지만, 그중에서도 전곡리 유적은 가장 규모가 크고 넓은 범위를 자랑한다.1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면적만 해도 778,296
m2에 달한다.9 이 넓은 지역의 퇴적층 속에는 여러 시대에 걸쳐 인류가 살았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 최근의 한 발굴 조사에서는 4개의 뚜렷한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이곳에서만 2,300여 점의 석기가 출토되기도 했다.13 이는 전곡리가 일시적인 야영지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반복적으로 인간 집단이 찾아와 생활했던 중요한 거점이었음을 시사한다.
이곳에서 발견된 석기들은 구석기인들의 다채로운 활동을 보여준다. 세계를 놀라게 한 주먹도끼 외에도, 무겁고 큰 석기로는 동물의 뼈를 부수거나 나무를 가공하는 데 쓰였을 자르개, 찍개, 여러면석기 등이 있다. 한편, 가죽을 벗기거나 손질하는 데 사용했을 긁개, 나무나 뼈에 홈을 파는 홈날석기, 사냥감의 숨을 끊는 찌르개 등 작고 정교한 석기들도 다수 발견되었다.1 특히 주먹도끼는 사냥한 동물을 해체하고, 가죽을 벗기고, 뼈를 부수고, 땅을 파서 식물 뿌리를 캐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구석기 시대의 맥가이버 칼’과 같은 만능 도구였다.2
더 흥미로운 점은 이곳이 단순한 생활 공간을 넘어 ’석기 제작소’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석기를 만들 때 떨어져 나간 수많은 격지(박편)와 석기의 몸돌, 돌을 깨는 데 사용한 망치돌 등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1 이는 전곡리인들이 한탄강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규암 자갈돌을 가져와 이곳에서 직접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썼음을 의미한다.1 물과 석기 재료라는 두 가지 핵심 자원을 모두 확보할 수 있었던 전곡리는 구석기인들에게 최고의 입지 조건을 갖춘 삶의 터전이었던 셈이다.
다만, 이 유적의 정확한 연대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다. 퇴적층과 유물의 분석을 통해 약 20만 년 전, 혹은 그보다 더 이른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견해와, 약 10만 년 전쯤으로 보는 견해가 공존한다.1 이는 고대 유적의 연대 측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정밀한 과학적 분석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4.1 표 1: 전곡리의 구석기 도구 상자
| 도구 이름 (국문/영문) | 형태 및 특징 | 추정 용도 |
|---|---|---|
| 주먹도끼 (Hand Axe) | 좌우 대칭의 눈물방울 또는 아몬드 모양. 양면을 가공하여 연속적인 날을 만듦. | 사냥감 해체, 땅파기, 나무 가공, 격지 생산 등 다목적 만능 도구. |
| 자르개/박편도끼 (Cleaver) | 도끼처럼 넓고 직선적인 날을 가짐. 주로 큰 격지를 이용해 만듦. | 동물의 큰 뼈를 부수거나 두꺼운 가죽을 자르고, 나무를 찍는 등 강력한 힘이 필요한 작업에 사용. |
| 찍개 (Chopper/Chopping-tool) | 강가의 조약돌 한쪽 또는 양쪽을 거칠게 떼어내 날을 만듦. | 나무를 부수거나 동물의 뼈를 깨뜨려 골수를 꺼내는 등 투박하고 힘든 작업에 사용. |
| 긁개 (Scraper) | 격지의 한쪽 면에 날을 세워 만듦. 날의 형태는 직선, 볼록, 오목 등 다양함. | 동물의 가죽에 붙은 살이나 지방을 긁어내고, 나무나 뼈를 다듬는 등 정교한 작업에 사용. |
| 찌르개 (Point) | 끝을 뾰족하게 만든 도구. 나무 자루에 연결하여 창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음. | 사냥감의 숨을 끊거나 가죽에 구멍을 뚫는 용도로 사용. |
| 홈날석기 (Notched tool) | 날 부분에 의도적으로 오목한 홈을 낸 도구. | 나무 창자루나 화살대 등을 매끄럽게 다듬는 ’대패’와 같은 역할. |
5. 제5장 돌과 유리의 유산: 전곡선사박물관
수십만 년의 세월을 건너 우리 앞에 나타난 돌도끼와 석기들. 이 위대한 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그 가치를 미래 세대에게 전할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이 바로 전곡리 유적지 위에 세워진 전곡선사박물관이다. 2011년 4월 25일 문을 연 이 박물관은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기관으로, 유적의 영구적인 보존과 연구, 그리고 대중 교육을 위해 건립되었다.8
박물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은빛 외관은 원시 생명체의 신비로운 모습을, 혹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선을 연상시키며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박물관 내부는 선사시대로 떠나는 시간 여행을 체계적으로 안내하도록 설계되었다.
상설 전시실의 핵심은 ’인류 진화의 위대한 행진’이다. 이곳에는 약 700만 년 전의 초기 인류인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부터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을 거쳐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총 13종의 고인류가 실물 크기의 정교한 모형으로 복원되어 있다.8 이들 곁에는 매머드, 털코뿔소 등 당시 함께 살았던 거대 동물들의 모형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들은 마치 구석기 시대의 생태계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전시의 주인공은 전곡리 유적에서 출토된 진품 유물들이다. 세계사를 바꾼 바로 그 아슐리안 주먹도끼를 비롯한 수많은 석기들이 유리관 속에서 수십만 년의 시간을 응축한 채 빛나고 있다.16 박물관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고기’, ‘석기시대 아이들’, ‘예술의 기원’ 등 매년 새로운 주제의 기획 전시를 통해 선사시대의 다양한 측면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8
전곡선사박물관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유물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관람객이 직접 선사시대를 ’체험’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고고학체험실에서는 가상현실(VR) 기술을 통해 발굴 현장을 체험하거나, 불 피우기, 석기 만들기 등 고고학 실험에 참여할 수 있다.18 또한 ‘알고 보면 쓸모 많은 주먹도끼 잡학사전’, ‘구석기 가족캠프’ 등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하며, 추상적이고 멀게만 느껴지는 구석기 시대를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경험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18
박물관은 장애인 주차장, 경사로, 휠체어 대여 서비스 등 무장애 편의시설을 잘 갖추고 있어 누구나 불편 없이 관람할 수 있다.16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16 전곡선사박물관은 과거의 유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과학과 상상력이 결합하여 미래를 향한 영감을 주는 살아있는 문화 공간이다.
6. 제6장 석기시대를 기념하다: 연천 구석기 축제
한적한 고고학 유적지가 매년 5월 초가 되면 수십만 명의 인파로 북적이는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신한다. 바로 ’연천 구석기 축제’다. 1993년, 당시 유적지 관리소 개관을 기념하는 작은 행사로 시작된 이 축제는 점차 규모를 키워, 이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하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관광축제로 성장했다.18 한 해에 95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갈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이 축제는 전곡리 유적의 가치를 대중에게 알리는 가장 역동적인 방식이다.21
축제의 핵심 철학은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즉 교육(Education)과 오락(Entertainment)의 결합이다. 방문객들은 지루한 역사 공부 대신, 온몸으로 구석기 시대를 체험하며 즐긴다. 축제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은 단연 ’구석기 바비큐’다.22 1미터가 넘는 나무 꼬치에 두툼한 돼지고기를 꿰어 참나무 숯불에 직접 구워 먹는 이 체험은 원시 시대의 공동체적 식사를 현대적으로 재현하며 축제의 상징이 되었다.22
축제장 곳곳은 거대한 선사시대 체험 마을로 꾸며진다. 방문객들은 털가죽으로 만든 ’전곡리안 의상’을 빌려 입고 구석기인으로 변신할 수 있으며, 활쏘기나 창던지기 같은 원시 사냥 체험에 참여하고, 다 함께 힘을 합쳐 움집을 만들어보기도 한다.22 스페인, 독일, 대만 등 세계 각국의 선사문화 전문가와 박물관이 참여하는 ’세계 구석기 체험마당’은 축제에 국제적인 색채를 더한다.22
2024년에 열린 제31회 축제를 살펴보면, 축제가 얼마나 다채롭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구석기 바비큐와 같은 전통적인 인기 프로그램 외에도, 총상금 2천만 원이 걸린 ‘전국 플래시몹 배틀 경연’, 전문 배우 75명이 축제장 곳곳을 누비며 춤과 공연을 펼치는 ‘퍼포머 퍼레이드’, 밤하늘을 수놓는 ‘드론 불꽃 공연’ 등 현대적인 볼거리가 가득했다.22 특히 반려동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펫존’을 별도로 마련하여 천만 반려인구까지 아우르는 세심함을 보였다.25
이 축제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축제 입장료(성인 7,000원)를 받아 그중 일부(5,000원)를 연천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로 돌려주는 제도를 도입했다.20 이는 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의 소비가 지역 상권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도록 유도하는 상생 전략이다. 연천 구석기 축제는 고고학 유적지가 어떻게 지역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는 구심점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다. 유적은 축제에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고, 축제는 유적에 대중적 생명력과 경제적 가치를 불어넣으며 완벽한 공생 관계를 이루고 있다.
7. 제7장 결론: 전곡리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한탄강변에서 그렉 보웬이 주먹도끼를 발견한 지 40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전곡리는 조용한 강변 마을에서 세계 고고학계의 지도를 바꾼 역사적 현장으로, 그리고 오늘날에는 수많은 사람이 찾는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전곡리 유적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무엇보다 인류의 과거를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을 교정했다는 데 있다. 모비우스 학설이라는 서구 중심의 낡은 패러다임을 무너뜨림으로써, 전곡리는 동아시아의 초기 인류가 결코 문화적 변방에 머물지 않았으며,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 진화의 당당한 주역이었음을 증명했다. 이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역사에 대한 이해를 더욱 풍부하고 공평하게 만든 과학적 성취였다.
동시에 전곡리는 ’공공 고고학’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발굴된 유적을 단순히 보존하고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곡선사박물관과 연천 구석기 축제라는 두 축을 통해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박물관은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교육을 제공하고, 축제는 즐거운 체험을 통해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폭발적으로 이끌어낸다. 이 두 요소의 시너지는 학술적 가치와 대중적 인기를 모두 확보하며, 유적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전곡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적지 주변에서는 새로운 발굴이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땅속에서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구석기 시대의 비밀이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있다.13 수십만 년 전, 이 땅의 첫 주인들이 남긴 돌멩이 하나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과학과 문화, 교육과 축제를 아우르며 미래 세대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을 것이다. 전곡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우리 모두의 소중한 유산이다.
8. 참고 자료
- 문화유산 연천 전곡리 유적, https://gjicp.ggcf.kr/mediaObjects/460
- 전곡리 구석기유적 - Google Arts & Culture, https://artsandculture.google.com/story/0QUBUqGwlsp4Iw?hl=ko
- 연천 전곡리 유적 전경 - 우리역사넷 - 국사편찬위원회,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000640&code=kc_age_10
- 주한미군이 연천 전곡리에서 주운 돌 전세계를 뒤집다!? | 조선왕조실록 후속시리즈 [설민석의 한국통사 EP.2] | 매주 월요일 공개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BSRnd3sMZtU
- 연천 전곡리 유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EC%97%B0%EC%B2%9C_%EC%A0%84%EA%B3%A1%EB%A6%AC_%EC%9C%A0%EC%A0%81
- 모비우스 이론 The Movius Line - 금성출판사 :: 티칭백과, https://dic.kumsung.co.kr/web/smart/detail.do?headwordId=5814&findCategory=B002005&findBookId=23
- 임진강 줄기를 따라 구석기시대 유적이 많이 있는데 -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Uid=13898859676195300885&ctptNo=1333102680000
- 전곡선사박물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A%B3%A1%EC%84%A0%EC%82%AC%EB%B0%95%EB%AC%BC%EA%B4%80
- 연천 전곡리 유적(漣川 全谷里 遺蹟)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9243
- 전곡리 유적 소개 - 전곡선사박물관 - 경기문화재단, https://jgpm.ggcf.kr/pages/remains
- [소년중앙] “그냥 깨진 돌이 아니라고?” 구석기 사람들은 어떻게 도구를 만들었을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5273
- 우리나라에서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계기 - Daum 카페, https://cafe.daum.net/subdued20club/ReHf/3713483?svc=topRank
- 전곡리85-12번지 구석기유적의 조사성과 - 선사 칼럼, https://jgpm.ggcf.kr/boards/prehistory%20column/articles/552
- [연천 가볼만한곳] 세계적 문화유산 <전곡리선사유적지> <선사박물관> 구석기인과 함께 하는 공원, 주먹도끼 - Daum 카페, https://cafe.daum.net/koreawonderland/jjOW/54
- [건축시선] 박물관 - 연천 전곡선사박물관 Museum-Yeoncheon Jeongok Prehistory Museum, https://www.youtube.com/watch?v=__p6A7IK2V0
- 전곡선사박물관 > 상세 | 관광지·명소 | 열린관광 모두의 여행, https://access.visitkorea.or.kr/ms/detail.do?cotId=f7c6fc7a-7816-4f77-9cad-5ed1c79e027a
- 전곡선사박물관 - metaArchive, http://dh.aks.ac.kr/~metaArchive/wiki/index.php/%EC%A0%84%EA%B3%A1%EC%84%A0%EC%82%AC%EB%B0%95%EB%AC%BC%EA%B4%80
- 전곡선사박물관, https://jgpm.ggcf.kr/
- 전시 - 전곡선사박물관 - 경기문화재단, https://jgpm.ggcf.kr/exhibitions
- 연천군, 연천 구석기 축제, 문체부 2024-2025 문화관광축제 지정 - 트래블아이, http://www.traveli.co.kr/read/contentsView/18072/0
- 구석기축제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A%B5%AC%EC%84%9D%EA%B8%B0%EC%B6%95%EC%A0%9C
- 제31회 연천구석기축제 - ::축제 정보 센터 || 페스티벌, https://thefestival.co.kr/info/festival/9472/
- 연천구석기축제 개막!…엑스포 향한 ’첫 걸음’ㅣ[풀영상] 헬로tv뉴스 경기북부 2025년 5월 2일 …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4FrsEualb6s
- [축제][연천]2024 연천 구석기 축제 - 꿀주먹이 알려주는 꿀정보 - 티스토리, https://schozo.tistory.com/68
- 오감만족, 선사시대 시간여행 ‘매력폭발’ [2024 연천 구석기축제] - 경기일보, https://www1.kyeonggi.com/article/20240506580239
- 연천구석기축제 | 문화관광축제 - 대한민국 구석구석, https://korean.visitkorea.or.kr/kfes/detail/fstvlDetail.do?fstvlCntntsId=62846e12-8274-40ef-b5f6-489c08a6240d